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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없는 자전거, 책임 없는 도로

백기범 2026. 5. 6. 12:27


자전거를 타고 도로에 나가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느낀다.
지금의 자전거는 너무 자유롭고, 동시에 너무 위험하다.
보행자는 자전거를 두려워하고,
자전거는 자동차를 두려워한다.
자동차는 자전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다.
이 혼란의 중심에는 한 가지 공백이 있다.

자전거는 교통수단이지만, 교통체계 안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
자동차는 번호판이 있고, 책임이 따른다.
오토바이도 등록과 보험이 있다.
그러나 자전거는 도로를 달리면서도 사실상 “익명”이다.
이 익명성은 두 가지 문제를 만든다.

첫째, 책임의 부재다.
사고가 나면 추적이 어렵고, 과실 판단도 모호하다.
신호를 무시하거나 보도를 질주해도 제재는 제한적이다.

둘째, 신뢰의 붕괴다.
보행자는 자전거를 예측할 수 없고,
자동차는 자전거를 교통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자전거는 도로 위에서 ‘중간자’가 된다.
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완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래서 자전거 등록제를 다시 꺼내야 한다.
물론 반론은 있다.
자전거까지 등록하면 규제가 과도해지고, 이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다. 잘못 설계된 등록제는 자전거를 위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단속을 위한 등록이 아니다.


신뢰를 만들기 위한 등록이다.
등록제는 처벌의 도구가 아니라
보험, 안전, 관리, 데이터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자식 QR 등록을 통해 자전거를 식별하고,
간단한 책임보험을 연계하며,
도난 방지와 사고 대응을 동시에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또한 전기자전거와 공유자전거는 이미 사실상의 등록체계를 갖고 있다.
문제는 개인 자전거다.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가장 관리되지 않는 영역이다.
등록제는 속도와도 연결된다.
지금처럼 모든 자전거를 같은 범주로 묶어 두면
25km 제한도, 고속 전기자전거도, 도로 이용도 모두 혼란스럽다.
등록을 통해 자전거를
ㆍ생활형
ㆍ통근형
ㆍ 고속형
으로 나누고, 그에 맞는 도로·신호·보험을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 자전거는 비로소 “도로 위의 시민”이 된다.
지금의 자전거 정책은 이렇게 말한다.
“조심해서 타라.”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로는 신뢰로 운영된다.
누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 가능할 때, 안전이 만들어진다.
번호 없는 자전거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자유는 결국 위험으로 돌아온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자전거를 계속 ‘책임 없는 자유’로 둘 것인가,
아니면 ‘책임 있는 교통수단’으로 만들 것인가.
등록은 규제가 아니다.
자전거를 교통으로 인정하는 첫 번째 단계다.